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인지도는 매우 낮지만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그의 악행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악행의 질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학정을 자행했다고 평가받는다. 그리고 응게마는 [[유송]]의 [[유자업]]과 [[후폐제(유송)|유욱]], [[남제]]의 [[소보권]], [[아이티]]의 [[프랑수아 뒤발리에]][* 1959년 [[인슐린]] 과다복용으로 [[심장마비]]에 걸려 잠깐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신경에 손상을 입어 정신이 악화되었다고 한다.]와 함께 정신적 문제가 극심한 자가 국가원수의 자리에 오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. 일단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널리 알려진 [[아돌프 히틀러]]와 [[이오시프 스탈린]]은 물론이고 [[백두혈통|김씨 3대]], [[마오쩌둥]], [[이디 아민]], [[폴 포트]], [[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]]처럼 응게마와 비교할 만한 학살 및 탄압, 국정 파탄[* 다만 스탈린에 한해서는 나치 독일을 패퇴시키고 소련을 양대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확고한 업적이 있긴 했다.]을 저지른 다른 독재자들과 비교하자면 이들 독재자들은 결과가 '''매우''' 안 좋았을 뿐이지 그들만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발전시킬 의지나 비전 혹은 명분만큼은 확실히 있었다. 일단 히틀러의 경우는 [[민족사회주의]]에 입각한 [[게르만족]]을 위한 [[레벤스라움|생활권]] 건설이라는 명분이 존재했고, 스탈린의 [[대숙청]] 역시 강력한 권력 기반을 마련한다는 명목이 있었으며 공업화 정책을 일구기도 했고, 마오쩌둥은 비록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망자라는 비참한 결과로 끝난 [[대약진 운동]]을 주도했지만, 제1차 5개년 계획의 성공이라는 배경과 농업 및 공업 분야의 발전이라는 목적과 [[자력갱생]]이라는 명분이 있었다. 하다못해 스스로를 백두혈통으로 지칭하는 북한의 김씨 왕조조차 [[이밥에 고기국 기와집에서 비단옷]]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[[지상락원]], [[강성대국]] 건설과 [[자력갱생]]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데다가 심지어는 '''그 폴 포트마저''' 크메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명분이 존재했다.[* 물론 이 독재자들이 위와 같은 명분을 내세우면서 '''수백만 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것 역시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임은 [[명약관화]]하다.''' 다만 이디 아민은 응게마와 비슷하게 나라를 발전시킬 의지와 비전, 뚜렷한 명분도 없이 학살과 인권 탄압을 저지르며 [[우간다]]를 파탄냈다.] 그러나 응게마는 후술하듯 극도로 심각한 정신병 환자였던 데다가 [[마약]]에까지 중독되어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를 제대로 이끌 능력은 물론이고 의지도, 비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, 오히려 아무 이유도 없이 국민들을 학살하고 '제국주의에서 벗어나 아프리카의 순수한 정기를 찾아야 한다'며 나라의 인프라를 모조리 파괴하며 적도 기니를 사실상 [[석기시대]]로 되돌려놔 누구보다 자신에게 충성하던 조카에게 배신당할 정도로 모두에게 버림을 받았고,[* 어느 정도였냐면 상술한 것처럼 응게마가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'''국민들이 얼싸안고 울기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.'''] 결국 응게마는 그 조카가 주도한 쿠데타로 쫓겨나 목숨을 잃고 무덤조차 찾을 수 없게 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